[역사 산책] 이익의 붕당론과 진보정당의 내분
실학자였던 성호 이익의 고향은 경기도 안산이지만 태어난 곳은 부친 이하진의 유배지였던 평안도 벽동군이었다. 이하진은 "분하고 답답해하다가 (유배지에서) 죽었다('숙종실록' 8년 6월)"고 전하고 있는데 이익에게 공부를 가르쳐준 둘째 형 이잠도 세자(경종)를 제거하려는 노론에 맞섰다가 사형당했다. 경종 때 소론에서 편찬한 '숙종실록 보궐정오'는 이잠이 '상소를 올려 스스로 춘궁(春宮: 세자)을 위하여 죽는다는 뜻에 부쳤는데 그 어머니가 힘껏 말렸으나 그만두지 않고 드디어 극형을 받았다'고 기록하고 있다. 그의 부친은 백호 윤휴와 함께 북벌과 신분제 해체를 주창했던 남인 진보파인 청남이었다. 이익이야말로 당심(黨心)으로 세상을 볼 수 있었다. 그러나 이익은 당파적 시각을 뛰어넘어 당쟁의 본질을 팠다. 그래서 '붕당론'에서 "붕당은 싸움에서 생기고 그 싸움은 이해관계에서 생긴다"라고 당쟁의 본질을 이해다툼이라고 보았다. 이익은 당쟁을 열 사람이 굶주리다가 한 사발 밥을 함께 먹게 되면서 일어난 싸움으로 비유했다. 이익은 '당습소란'에서 "당파의 폐습이 고질화되면서 자기 당이면 어리석고 못난 자도 관중이나 제갈량처럼 여기고 가렴주구를 일삼는 자도 공수.황패(한나라 때 유명한 목민관들)처럼 여기지만 자기의 당이 아니면 모두 이와 반대로 한다"면서 남이 하면 불륜이고 내가 하면 로맨스라는 비뚤어진 관점을 비판했다. 요즘 진보정당이 복지논쟁 등 진로 문제로 시끄러운 것이 아니라 내부의 비상식적 행태로 시끄럽다는 점이 이미 본궤도에서 벗어났다는 증거다. 당쟁 피해자의 관점을 뛰어넘어 당쟁의 본질을 간파하고 대안을 제시했던 이익의 혜안이 새삼 돋보인다.